독서

[소설] 방황하는 칼날

shininghyunho 2024. 1. 12. 17:52

법은 왜 존재할까?

소설에서는 이 화두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한 마을에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처벌해야할것이다. (처벌하지 않으면 살인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처벌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누구는 더 처벌하고 누구는 덜 처벌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일관성을 이라고 한다.

 

법전에 이렇게 쓸것이다.

'살인을 저지른자 처벌한다.'

그리고 추가적인 디테일에 따라 어떻게 처벌할건지 상세한 부분을 기술한다.

(계획살인인지, 얼마나 잔혹했는지, 가해자가 몇살인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가해자의 태도가 어땠는지 등등)

 

처벌을 결정할 단계다.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은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처벌을 사회로부터의 격리로 결정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법률에 따라 범죄자를 일정 기간동안 격리한다.

됐다. 이제 우리는 범죄자를 처단하고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됐다.

그럼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남겨진 피해자

피해자는 법률적으로는 살인당한 사람만 해당될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이 포함된다는걸 생각하면

피해자를 보다 더 넓게 정의할수 있을것이다.

그럼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겪게되는 피해는 단순히 살인 그 자체보다 더 클것이다.

 

하지만 법전에는 '살인을 저지른자 처벌한다.' 라고만 적혀있을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사건이 발생하고 모든 에너지는 가해자에게만 쓰인다.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하고 얼마나 격리할지만 고민한다.

심지어 격리의 목적도 가해자를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한 갱생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법은 더욱더 너그러워진다.

구치소보단 소년원에 가게되고,

형을 살고 나온다해도 성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형을 다 마친 가해자는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갈까?

아니 정상적으로 살아간다고 우리는 믿어줘야할까?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는 않을까?

우리는 그 피해자를 보호 할순없을까?

 

상황이 이상하다.

가해자가 범죄를 계속 일으킬 확률이 높고 반성도 안해도

형 기간만 채우면 다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다.

피해자가 어떤지는 전혀 고려할 바가 아니다.

그러면 처음에 던진 그 질문이 떠오른다.

법은 왜 존재할까?

 

이제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알았다.

법은 절대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붕괴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건데?

맞다. 나도 이 질문이 계속 머리속에 남는다.

뭐 비판하는거야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럼 뭐 어쩌잔거야?

 

사실 정답을 없을거같다.

법률에 피해자에 대한 내용을 쓰기엔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많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1년간 매일 반성해야한다.' 라는 내용을 적을순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형량을 좀 더 높혀야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우리나라의 형량은 아직 너무 낮다.

 

높은 형량이 범죄율을 낮춘다는건 아니다.

이는 많은 논문과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에서 이미 많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형량은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많이 동떨어져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형량으로 인해 지속적인 문제가 있어왔다.

몇백억의 사기를 쳐도 환수도 거의 못한채 몇년만 살다 나온 사기범들이 수두룩하다.

어린 청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약하다는걸 알아서 오히려 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 돌려차기를 한 가해자는 감옥에서 복수만을 꿈꾼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해당 가해자는 몇년만 있으면 나온다는걸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형량 강화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해자들을 피해자들로부터 최대한 격리시킬수는 있다.

 

또한 법이 해주지 못하는 부분은 사회가 해결해주어야한다.

법은 사회 시스템을 지키기위하게 담겨두고,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단순히 피해자들에게 돈을 줘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해자 인권을 더 축소시켜 피해자에게 더 추가적인 피해를 맊고,

똑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범죄 예방에 더욱 예산을 사용해야할것이다.

소설속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는 법원이 구제해주지 못해 결국 스스로 복수하기로 결정한다.

물론 처음엔 용서받기를 바랬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용서한다면 아버지는 모든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녹화된 범죄 장면은 너무나도 장인해 가해자가 같은 인간으로 생각이 안들었다.

가해자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상황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했다.

최악의 상황은 가해자가 청소년이기에 금방 사회로 복귀해 떳떳하게 살게될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라면 가해자를 사법체계에 맡겨야할까?

그게 가능하다면 제 정신인 인간일걸까?

나도 위에서 뭐 누구나 차분하게 생각하면 할만한 뻔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당사자라면 어떨까?

 

아마 그때는 성인군자처럼 행동하지 못할거같다.

성인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같은 대학교 동기가 술김에 여자친구에 대해 저급한 말을 한것이다.

(다행히 이후 상황은 사과받고 잘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쉽게 흥분하는데, 하물며 살인이라니.

 

물론 복수를 통해 피해자도 가해자가 된다면,

결국 가해자가 이기는 싸움이 된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피해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것이다.

 

결국 나도 이 소설의 제목처럼 칼날이되어 방황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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